기록되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나 마찬가지다.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1882)의 말입니다. 영상기자에게 이 말이 가장 와 닿는 순간은, 코리아풀로 혼자서 취재를 하는 경우일 것 같습니다. 지난 2018년,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을 취재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는데요. 혼자서 공연 전체를 취재하며, 뉴스시간에 맞춰 송출까지 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취재를 잘 했어도 송출을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겠죠? 그래서 결국 영상을 랜더링해서 송출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한 가수의 취재는 포기해야 했었는데요. 뉴스로 보는 사람들은 그 가수는 평양공연에 안갔나 생각할 수 밖에 없었겠죠? 그 가수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사실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습니다. 당시 북한의 박춘남 문화상과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공항에 우리 방북단을 마중나왔는데요. 원래라면 환담장면은 인삿말 정도만 공개하는게 보통인데. 이 때는 나가라는 말도 없이 공항 귀빈실에서 이어진 환담 전체공개하는게 아니겠어요?
위탁수하물로 맡긴 트라이포드도 찾지 못하고 비행기 문이 열리자마자 시작된 취재! 거의 한시간 째 어깨걸이로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요. 힘든 것도 힘든거지만, 이렇게 흔들리는 영상을 지금 30분 이상 담았는데.. 어차피 다 사용하지 못할 것 같더라구요. 송출시간도 고려를 해야하기 떄문에 중간부터는 적당히 내용을 들어가며 레코딩 버튼을 눌렀습니다. 원래라면 모든 대화를 다 담는게 원칙이지만 송출시간이나 다음 일정도 고려를 해야하니까요.
당시 두 차례의 보수정권동안 중단되었던 남북교류가 거의 10년 만에 다시 이뤄진 행사였는데요. 이렇게 영상기자의 선택으로 역사의 기록이 취사선택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현장의 기록자가 저 혼자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대표로 혼자 갔더라도 거기에 외신기자가 있을 수도 있고요. 행사 관계자가 휴대전화로 영상을 촬영하거나, 속기사가 대화를 기록으로 남길 수도 있으니까요. 또 여러 기자가 현장에 있다 하더라도 모든 순간을 CCTV처럼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매 순간 영상기자에 의해 선택된 장면만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되는거고요.
아무튼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이 되지 않는다면, 훗날 그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될 수도 있는겁니다. 역사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과거 사실에 대한 기록을 뜻하기도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영상기자들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사관 (史官)의 마음가짐으로 오늘의 현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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