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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평냉은 가짜다

해외취재기

by 영상기자 2022. 8. 4.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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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계정의 글을 옮겨오는 작업 중입니다.
아래 글은 2018년 4월 11일 포스팅된 내용입니다.

 

평양에 다녀와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아마도 ‘평양냉면은 어땠어?’ 일 것이다. 

김정은보다도, 공연보다도, 북한의 취재환경에 대한 것보다 더 궁금한 것이 냉면이라니. 사실 나도 이번 평양 출장에서 가장 기대됐던 부분이 바로 옥류관의 냉면이었다. 우리 태권도 시범단의 합동 공연이 있었던 4월 2일 점심, 남측 대표단은 다 함께 평양 창전거리에 위치한 옥류관에 방문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옥류관이기에 다들 입구에서 인증샷을 한 장씩 남기고 오찬장이 마련된 2층으로 올라갔다.

옥류관
평양 창전거리에 위치한 옥류관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옥류관 수육
냉면이 나오기 전 개인별로 제공되는 옥류관 수육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먹을 수 있게 수육과 술떡, 잔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수육은 겉보기에는 다소 퍽퍽하고 새우젓을 찍어 먹어야 할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부드럽고 간도 되어 있어서 특별히 뭘 찍어먹지 않아도 깊은 맛이 있었다. 고기의 겉부분 색이 더 짙은 걸로 봐서는 간이 된 육수에 삶아낸 듯하다. 인당 세 점이 제공되었다. 유기 잔에 든 것은 소주다. 처음에 물인 줄 알고 마셨다가 뿜을 뻔한 사람도 보였다. 평양의 소주는 대체로 25~30도 정도 되는데 이날 제공된 술은 30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낮은 도수의 소주를 주로 먹는 우리들에게는 조금 독했지만 깔끔한 맛이었다.

옥류관의 테이블셋팅
옥류관의 테이블셋팅. 조미료 통에는 식초와 겨자, 고추가루도 준비되어 있다.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함께 제공된 술떡은 서울에서 먹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이었다.

옆에 놓인 종지에 담긴 것이 뭔지 몰라 북측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초간장이란다. 술떡이나 고기를 찍어먹으면 된다고. 그런데 그것만 따로 찍어 먹어보니 시지도 짜지도 않고 별다른 맛이 없었다. 우리 식의 초간장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이어서 제공된 음식은 고기완자였다. 정확한 메뉴 이름이 고기완자인지는 모르겠다. 심심한 육수에 담겨 나오는데 아마도 닭고기(또는 꿩고기)로 만든 것 같다. 크기는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유리구슬 정도 크기인데 그리 진한 맛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나온 음식은 녹두전. 심플한 비주얼이다. 붉은빛이 감도는 노란색 전이 정월의 보름달을 연상시킨다. 가운데 김치 조각 같은 것이 하나 박혀있다. 두께는 두껍지도 않고 얇지도 않은 정도. 뜨겁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담백하고 부드러워 맛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돼지기름에 두껍게 튀기듯 부쳐내어 겉이 바삭한 녹두전을 좋아하는데, 옥류관 녹두전은 그런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맛있었다.

고기완자와 앙념장
고기완자와 앙념장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드디어 대망의 냉면이다. 일단 비냉인지 물냉인지 물어보지도 않고 모두 물냉으로 제공되었다. (단체로 왔기 때문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 잘 말린 면위에 김치와 고기, 계란지단이 쌓여있는데 특히 계란지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종이처럼 얇은 지단을 가늘게 썰어 올렸는데 마치 고명으로 많이 쓰는 실고추와 같은 모양이었다. 노른자를 많이 사용했는지 노란 빛깔이 아름다웠다. 서울에서 먹던 평양냉면과 가장 큰 차이점은 면이었다. 우선 한눈에 보아도 색깔이 무척 짙었다. 반짝이는 유기그릇에 담긴 검은 면발이 더욱 식욕을 자극했다. 질감은 더 놀라웠다. 서울의 평양냉면보다 훨씬 쫄깃하고 질겼다. 원조 평양냉면이라면 정인 면옥 순면 정도의 질감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의외였다. 면을 흡입할 때 느껴지는 질감도 훨씬 미끈거렸고 질겨서 잘 끊어지지 않았다. 가위를 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걸 메밀로만 만들었단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전분이 섞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기가 부족한 메밀만으로 이렇게 질긴 면을 만들었다는 건 아무래도 믿기 힘들었다.

 

옥류관 냉면
옥류관 냉면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고명으로는 닭인지 꿩인지 모를 고기를 찢어 올린 것과, 소고기, 돼지고기가 서너점씩 넉넉히 올라왔다.

고명을 보아 육수도 세 종류의 고기육수를 섞은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육수의 비밀은 아직 외부에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먼저 냉면을 받자마자 그릇을 들고 육수를 한 모금 들이켰는데 밍밍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극적이지도 않았다. 감칠맛과 단맛이 감돌면서 향긋하고 산뜻했다. 서울의 평양냉면 육수가 육향이 진한 편이라면 옥류관의 육수는 깊이가 있으면서도 고기 맛이 도드라지지 않는 조화가 느껴졌다. 육수의 온도도 너무 차갑지 않아 마시는데 부담이 없었다.(을밀대의 거냉 정도 온도다.) 수육과 전이 함께 제공되어 그런지 냉면의 양은 많지 않았다. 육수도 좀 부족해서 추가로 부탁했는데 주전자를 가져오셔서 넉넉히 부어주셨다. 추가한 육수에 면을 잘 풀어 적신 후 한 젓가락 들어 물었는데 잘 끊어지지가 않아 좀 애를 먹었다. 입안에서 면과 육수가 조화되어 씹히는 맛도 제법 괜찮았다. 면을 반 정도 먹은 후 국물이 자작하게 남은 상태에서 함께 제공된 양념장을 넣어 먹었다. 맵거나 달지도 않고 자극적이지 않은 감칠맛이 났다. 그렇지만 내 취향에는 양념을 넣지 않은 편이 나았다.



옥류관 냉면을 먹어본 감상은 일단 의외라는 것이다. 

기대했던 평양냉면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서울의 평양냉면이 맛있냐, 옥류관이 맛있냐 하는 평가는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서울에서도 업소에 따라 다양한 맛의 평양냉면이 존재하니, 호불호는 개인 취향의 문제인 것 같다. 다만 서울식 평양냉면 맛의 평균을 낸다면 그것과 옥류관의 맛 차이는 분명 크다고 할 것이다. 진짜 평양냉면의 기준을 옥류관 냉면으로 한다면, 서울식 평양냉면은 모두 가짜라고 해도 괜찮을 정도다. 첫인상이 기대와 너무 달라서 놀랍긴 했지만 옥류관 냉면은 꽤 맛있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이가 있어 내공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시간여유가 있었다면 좀 더 음미할 수 있었을 텐데, 취재하랴 밥 먹으랴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느긋하게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고려호텔의 평양냉면
고려호텔의 평양냉면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고려호텔에서도 냉면이 한번 나왔는데 면의 색깔은 옥류관보다도 더 검은 색에 가까웠고, 육수도 훨씬 짰다. 함께한 사람들은 옥류관보다 맛있다는 평가도 있었는데 나는 배가 너무 부른 상태여서 다 먹지 못하고 남겼다. 피곤한 상태여서 입맛이 없기도 했다. 옥류관 냉면보다는 닭고기 향이 더 진하게 느껴졌다. 당시에는 남길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많이 아쉽다.

언제 또 평양에서 냉면을 먹어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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