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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못할 평양의 만우절 : 평양취재기

해외취재기

by 영상기자 2022. 8. 1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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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계정의 글을 옮겨오는 작업 중입니다.
아래 글은 2018년 4월 9일 포스팅된 내용입니다.

 

 

 - 북한은 왜 영상기자를 선택했나



 김포발 평양행 이스타 항공기가 드디어 북녘땅 상공에 진입했다. 남한 상공에서 보던 풍경이 초록색이라면 여긴 흙빛에 가깝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며 평양 순안공항에 접근하자 무채색의 건물들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보였다. 활주로에서 본 평양 순안공항의 모습은 그 규모만 작을 뿐, 유리로 된 외관이 우리나라 인천공항과 흡사해 보였다.

- ‘위대한 령도자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김일성・김정일의 초상, 그리고 건물마다 걸린 선전문구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북한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지금 북한에 있는 장면을 상상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황량한 들판에 초록이 꿈틀거리며 올라오듯, 봄은 어느 순간 우리 곁에 다가와 있었다.

동평양대극장
우리 예술단의 단독공연이 열린 동평양대극장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평양에 도착한 둘째 날인 4월 1일. 우리 태권도 시범단의 공연은 14시, 예술단의 공연은 17시(평양 시각)로 예정되어있었다. 오전에는 어제 못 보내준 영상을 송출하며 여유 있게 보낼 계획이었다. 100MB 영상을 보내는데 10분이 채 안 걸렸다. 평양의 인터넷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마음을 졸였는데 이 정도면 기대 이상이다. 우리가 묵었던 고려호텔의 조식도 매우 궁금했다. 기대를 안고 간 식당은 제법 훌륭했다. 북한식으로 한번, 서양식으로 한번, 두 접시를 깔끔하게 비웠다. 든든한 배를 두드리며 프레스센터로 왔는데 북측 안내원이 기자단 간사에게 공연시간이 변경될 것 같다고 했단다. 뭐 어느 정도 일정 변경이 있을 거라고는 이미 예상했던바였다.

고려호텔의 조식
평양 고려호텔의 조식. 다양한 북한음식과 서양식 조식, 그리고 즉석 오믈릿 코너도 준비되어 있다.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아직 아침먹은 것도 소화가 안됐는데 또 점심시간이다. 점심도 진수성찬이었지만 배가 불러 얼마 먹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두시가 좀 지났을까. 우리 정부 관계자가 프레스센터로 와서 오프 더 레코드로 할 말이 있으니 노트북을 모두 닫아달란다. 북측의 요구를 수용해 공연시간을 19시로 변경했고, 지금 바로 출발해야 한단다. 19시로 늦춰졌는데 왜 지금 출발해야 하냐 물었더니 그것도 북측의 요구사항이란다. 태권도 공연을 취재하고 넘어가는 것도 안 된단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여기는 북한이니까. 알겠다고 하고 서둘러 취재 준비를 하며 높은 사람이 오나보다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김정은 위원장은 3일 합동 공연에 올 테니까, 우리는 2호 정도가 오나보다 생각했다. (1호는 김정은 위원장을 지칭하는 기자들끼리의 은어였다.)

 

동평양대극장
동평양대극장 입구에서 우리 취재진의 가방을 검색하는 북측 경호원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우리 기자단 10명 중 2명은 태권도공연장으로 가고, 나머지 8명이 예술단 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예술단 단독 공연이 열리는 동평양대극장 도착하니 우리가 가지고 온 가방도 열어보고, 카메라도 정상작동이 되는지 검사한 후 입장할 수 있었다. 극장 안에는 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공연장에 입장 후 가장 먼저 북측 안내원과 취재할 수 있는 자리를 협의했다. 중계 카메라를 가리지 않는 두 군데 정도 위치에서 취재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허락을 받았다. 이어서 시작된 리허설. 짧은 준비기간에 이 정도 준비한 것이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무대였다. 북측의 현송월 단장은 리허설 내내 홀로 앉아 우리 공연을 유심히 보며, 중간에 사진도 찍고 어딘가로 통화를 하기도 했다.

현송월
1일, 우리 예술단 단독공연 리허설을 지켜보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저녁 5시쯤, 리허설이 서둘러 마무리 됐다. 우리 기자들은 화장실도 못 가고 리허설을 지켜봤기에 모두 나와서 안내원을 따라 화장실로 이동했다.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공연장에 가기 위해 나왔는데 우리가 가지고 온 가방을 모두 밖으로 빼놨다. 가방을 챙겨서 다시 화장실이 있는 대기실 쪽으로 이동하란다. 아무래도 고위층들이 오니 보안검색 때문에 가방도 다 빼고 다시 점검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대기실에는 빈방이 없어 기자들은 대기실 앞 복도에서 방황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제쯤 들어갈 수 있을까, 공연장에 두고 온 카메라를 치워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됐다. 아침을 배불리 먹은 탓에 점심을 간단히 먹었더니 배가 고팠다. 출연자들을 위해 복도에는 커피와 빵, 수박, 탄산 단물 같은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다. 허기를 좀 달래려고 컵케익을 들어서 한입 베어 무는데 북측 안내원이 다급하게 나를 찾는다.

“강 선생, 지금 빨리 가야 됩니다.”

 

출연자대기실
리허설이 끝나고, 출연자대기실 앞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자단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우리나라에서야 취재지원이 잘 안 되면 성질도 내보고, 못 찍게 막으면 싸우기도 하는 나였지만 북한에서는 지금껏 안내원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랐다. 일단 안전하게 집에 가야 했고, 또 괜히 좋은 분위기에 내가 찬물을 끼얹을까 걱정도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빨리 가자길래 재빨리 튀어나갔다.

“잠깐만요, 가방 좀 챙길게요.”
- 아니 급한데 꼭 가져가야 됩니까?
“그럼요. 중간에 배터리 갈아야 돼요.”

 

출연자대기실
리허설이 끝나고, 출연자대기실 앞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기자단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그렇게 공연장에 들어섰는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1200석 객석이 꽉 들어차 있었다. ‘별다른 소란도 없었는데 이 사람들 언제 다 들어와 있었던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측 사람은 나 혼자였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공연장은 1200명이 들어와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고, 관객 대부분은 정장이나 한복을 차려입은 채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한 안내원이 다가와 어디서 취재할 건지 자리를 정하라고 했다.


“아까 여기랑 저 반대편 두 군데서 취재하기로 다 얘기가 됐습니다.”
- 돌아다니는 건 안됩니다. 딱 한 군데 정하시라요.

여기서 더 이상 얘기해봤자 소득이 없을 건 뻔했다. 그럼 지금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취재하겠다고 했다. 모두가 엄숙히 앉아있는 가운데 안내원들만 바삐 움직였다. 들어보니 우리 측 중계 감독들을 찾고 있는 거였다. 그들도 나처럼 영문도 모른 체 급히 불려 들어왔다.

그렇게 각자 자리를 찾아 서고, 또다시 이어진 기다림의 시간. 옆에 계신 감독님이 말을 걸어왔다.

- 분위기가 참 엄하네요.
“그러게요.”


그 엄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뒤로 돌아 객석 모습을 취재했다. 이렇게 공연 관람을 대기하고 있는 북측 주민들의 모습도 기록해 둘 가치가 있어 보였다. 뒤를 보니 2층 객석에 현송월 단장이 앉아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 단장의 모습도 한 컷 담았다. 그 순간 한 안내원이 다가와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

-기자 선생,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앞에만 보시라요.

‘아.. 주민들 모습 촬영하는 건 민감하게 반응하는구먼.’

 

그동안 거리 스케치는 물론 호텔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차 타고 이동 중에 촬영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던 북측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뒤로 돌아서 관객들 리액션은 촬영해야 되는데. 이거 참 곤란하게 됐다. 그때부터 나의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김영남 일지, 김여정 일지, 북측 vip 누가 오던 그것도 취재해야 하고, 관객 리액션도 반드시 담아야 하는데 뒤를 보지 말라니.. 지금까지는 북측 안내원의 말을 꼬박꼬박 잘 들었지만 이러면 어길 수밖에 없는데.. 무시하고 촬영하다가 쫓겨나면 공연 영상은 하나도 못 챙기는 건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직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최고령도자시며 경애하는..
‘어라? 이건 김정은인데?’

재빨리 레코딩 버튼을 누르고 뒤로 돌아 2층 객석을 바라보았다. 2층 객석 가운데로 줌을 넣자 기다렸다는 듯 김정은 위원장이 뷰파인더에 나타났다. 김정은이 박수를 치고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옆자리에 선 도종환 장관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김정은이 오늘 공연에 나타나다니! 내 눈으로 직접 김정은을 보다니..

김정은
사진기자단에 제공된 김정은 위원장의 영상캡쳐화면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이 남한에 와서 공연할 때, 두 번째 서울 공연에서 우리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관람을 했다. 그에 따라 북측에서도 두 번째 남북 합동 공연 때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할 것이라는 게 모두의 예측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다고 해도 삼엄한 경비 때문에 우리는 근처에도 못 갈 것이다, 촬영도 못하게 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얘기를 듣고 간 상태라 막상 뷰파인더로 김정은을 보고 나니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우리 언론 최초의 김정은 촬영이었다. 북한과 중국 관영매체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김정은이 언론 카메라 앞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사진기자단에 제공된 김정은 위원장의 영상캡쳐화면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뒤를 돌아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나타난 순간에는 그냥 본능에 따라 움직였던 것 같다. 마침내 공연이 시작되고 공연 영상을 담으면서 계속 뒤가 신경 쓰였다. 김정은은 어떤 표정으로 공연을 보고 있을까? 잠깐씩 뒤돌아서 2층 객석을 확인해봤는데 어두워서 그런지 잘 보이지가 않았다. 한번 경고를 당하고 나니 뒤돌아서 리액션을 촬영하는 게 계속 부담이 되었다. 북한 주민들 모습 담는 것도 민감하게 구는데, 하물며 북한 최고지도자이니.. 그동안 북측 안내원들과 분위기도 좋았고 서로 지킬 것은 지켜주자는 분위기에서 지내왔는데, 그 선을 넘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김정은 위원장을 촬영했다고 나가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리액션을 담으려면 뒤를 자꾸 볼 수밖에 없는데.. 주변에 북측 안내원들은 멀리서 지켜보고는 있었지만 어떤 표정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일단 나중에 지우더라도 촬영은 하자.’ 설마 화해 분위기인데 집에 안 보내주진 않겠지.. 그렇게 공연 내내 마음을 졸이며 관객 리액션을 담았다.

다행히 우리 단독 공연은 성황리에 마쳤고, 김정은이 나갈 시간을 확보하기 위함인지 공연 종료 후에도 아무도 공연장 밖에 나가지 못하고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런데 아까부터 든 궁금증이 나머지 우리 기자들은 어디에 앉아서 본거지? 풀기자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다시 대기실로 갔더니 우리 기자들은 모두 멘붕에 빠져 나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 공연 봤어? 김정은은 찍었어?
‘아, 나 혼자만 들어간 거구나..’

일단 본능적으로 송출하기 전까지는 말을 아껴야 한다고 느꼈다. 고려호텔에 도착해 오늘 공연을 한 가수 '레드벨벳'의 인터뷰까지 마친 후 컴퓨터에 원본을 옮기며 드디어 정신이 들기 시작했다. 공연장에서 통신수단이 없던 풀기자 들은 긴급히 서울에 ‘김정은 참석’ 소식을 전했다.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던 선배도 재빨리 송출 준비에 들어갔다. 자정뉴스까지 한 시간 정도 남은 상황. 일단 김정은이 참석한 모습부터 짧게 잘라 파일 하나를 만들고, 공연 영상 일부를 잘라 보내고 있었다.

- 근데 오늘 일요일이자나? 12시 뉴스가 없네..
모두가 너무 정신없고 긴장된 탓인지 요일까지 잊고 있었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사진기자 선배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윤전기 돌기까지 한 시간도 안 남았어..

펜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공연장에 들어오지 못한 사진기자 선배들이 우리에게 영상 캡처를 요청해놓고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었다. 일단 방송은 급한 불 껐으니 캡처부터 하기로 하고, 김정은과 도종환 장관이 잡힌 영상에서 좋은 순간을 찾아 사진으로 캡처를 해서 드렸다. 사진기자 선배들은 일단 1면은 막았다는 안도와, 평양까지 와서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류경정주영체육관
4월 3일 남북예술단합동공연이 열린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 혼자 공연장에 들어간 것은 모두 북한의 계산된 행동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혼자 그렇게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었던 건데.. 그런데 북한은 펜 5명, 사진 2명을 포함해 8명의 우리 기자 중에서 왜 영상기자인 나를 선택했을까? 아마도 김정은이 공연장에 등장하는 그 모습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게 영상이라고 생각했으리라. 한편으로는 경호 등의 문제로 최소한으로 공개해야 했다면, 영상기자가 들어가서 촬영해오면 거기서 사진도 캡처하고 그걸 보고 글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나. 선전선동에 능한 북한이니 분명 그런 부분까지 계산하고 준비했을 것이다.

이렇게 거짓말 같은 하루가 지났다. 갑작스러운 공연시간 변경에, 삼엄한 검색까지. 돌이켜보니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한다는 힌트는 많았던 것도 같다. 하지만 북측 인사들의 경호가 어느 정도인지 경험이 없었기에 1호인지, 2호인지 확신이 없었다. 다시 한번 김정은을 취재할 기회가 생긴다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정도 느낌이면 김정은이다!’라고. 3박 5일간의 평양 출장에서 ‘봄이 온다’, ‘우리는 하나’를 취재하고 알렸지만 공연장에서 마주한 평양 주민들의 표정을 떠올리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 것 같다.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감정을 숨김없이 얼굴에 드러낼 수 있는 그때서야 진정 한반도에 봄이 왔다고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렵게 살려낸 남북관계의 불씨를 잘 키워 한반도 전체가 밝게 빛나는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평양 창전거리
평양 창전거리를 스케치 중인 통일부 방송풀기자단.(사진=평양공연 공동취재단)

 

 

서울의 평냉은 가짜다

다른 계정의 글을 옮겨오는 작업 중입니다. 아래 글은 2018년 4월 11일 포스팅된 내용입니다. 평양에 다녀와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아마도 ‘평양냉면은 어땠어?’ 일 것이다.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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